창세기 33장에서 야곱은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 땅 세겜 성에 이르게 된다(창33:18). 그리고 그는 그 곳에 장막을 쳤다. 

 

(창 33:18) 야곱은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 땅 세겜 성에 무사히 이르렀습니다. 야곱은 성 동쪽에 장막을 쳤습니다.
(창 33:19) 야곱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은 돈 백 개를 주고 샀습니다.
(창 33:20) 야곱은 그 곳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 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아와 야곱 사이에서 태어난 딸 디나가 그 땅의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가(창34:1) 하몰의 아들이자 그 땅의 추장이었던 세겜의 눈에 띄어 그에게 강간을 당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야곱의 아들들이(특히 시므온과 레위가 주동이 되어) 세겜 성을 공격해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을 했다. 야곱의 아들들로서는 누이가 강간을 당했기에 그렇게 복수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할 일이었으나 야곱은 그 일을 통해 곤란에 처하게 되었다. 

 

(창 34:30) 그러자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나에게 괴로움을 안겨 주었다. 이제는 이 땅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이 나를 미워할 것이다. 우리는 수가 적다. 만약 그들이 힘을 합해 우리를 공격하면, 나와 우리 집안은 멸망하고 말 것이다.”
(창 34:31) 하지만 그 형제들이 말했습니다. “우리 누이가 창녀 취급을 받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을 수 있습니까?”

 

야곱으로서는 고생만 하던 밧단아람을 떠나 드디어 가나안 땅에 잘 정착을 하나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고난에 다시 직면하게 된 것이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괴로워하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임하셨다! 

 

(창 35:1)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벧엘 성으로 가서 그 곳에서 살아라. 네가 네 형 에서를 피해 도망칠 때, 그 곳에서 너에게 나타나셨던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라.”

하나님은 야곱에게 다시 기본으로, 본질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다. 이전에 야곱에게 있었던 절체절명의 위기(형 에서와의 관계)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던 곳, 벧엘로 다시 가서 그 곳에서 살며,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 하시는 것이다. 

 

(창 35:2) 야곱이 자기 가족과 자기와 함께 사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 우상들을 다 버려라. 너희 스스로 깨끗하게 하고 옷을 바꾸어 입어라.
(창 35:3) 여기를 떠나 벧엘로 가자. 그 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을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는 내가 괴로움을 당할 때에 나를 도와 주셨으며,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와 함께 계셨다.”
(창 35:4) 이 말을 듣고 그들은 가지고 있던 이방 우상들을 다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귀에 걸고 있던 귀걸이도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야곱은 그것들을 세겜 성에서 가까운 큰 나무 아래에 파묻었습니다.
(창 35:5) 그런 다음에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그 곳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근처에 있는 성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야곱의 아들들을 쫓아오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큰 결심을 하였다.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 우상들을 다 버려라. 너희 스스로 깨끗하게 하고 옷을 바꾸어 입어라." 정말로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새기게 되는 장면이다. 야곱은 가족들에게, '이방인들의 땅인 세겜 성에 살면서 어느샌가 그들에게 틈탄 이방의 풍습들을 버리라'고 명령한다. 야곱은 가족들에게 닥친 고난의 이유가 결국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지 않고 이방 우상들을 섬기고 그 땅의 사람들처럼 그들의 문화를 즐기고 있었던 것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면 세상과의 충돌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될수록 세상과의 다툼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요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 알아라.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것이라고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선택하였으므로 세상은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세겜 성에서의 모든 이방 풍습을 버리고, 즉 세상을 버리고! 벧엘로, 즉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선포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만났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가족들에게 당당하게 증거하였다. "여기를 떠나 벧엘로 가자. 그 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을 것이다. 그 하나님께서는 내가 괴로움을 당할 때에 나를 도와 주셨으며, 내가 어디를 가든지 나와 함께 계셨다." 이 말을 듣고 야곱의 가족들은 이방 우상들을 다 내어놓고, 귀걸이도 내놓았다. 야곱은 그것들을 세겜 성에서 가까운 큰 나무 아래 파묻었다. 가정 안에서 영적으로 가장 깨어있는 한 사람(야곱)을 통해 이 가정은 하나님 앞에 어떤 죄를 짓고 있었는지, 돌이켜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깨닫고, 실제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돌이킴(회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정 안에서 한 사람의 깨어있음으로 결국 그 가정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롬 12:1)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나는 하나님의 자비로써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살아 있는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여러분이 마땅히 드려야 할 영적인 예배입니다.
(롬 12:2)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혼과 몸은 별개일 수가 없다. 영혼이 몸을 지배하게 해야지, 몸이 영혼을 지배하게 내버려둬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가 몸으로 행동하는 것은 나의 마음과 생각(즉, 영혼의 일)을 따라 가는 것이기에 먼저 내 몸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살아 있는 제물로 드리는 것(=곧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대로 순종하여 삶을 사는 것)에 집중할 때 그것이 곧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임을 깨닫게 된다. 디나가 세겜 성의 여자들을 보러 나가지 않았더라면, 즉 세상을 본받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텐데,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이 세상의 것들에 호기심을 갖고, 알고 싶고 보고 싶은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겠다고 결단하게 된다. 

 

세겜 성에서 가졌던 이방 우상들과 귀걸이를 땅에 파묻고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세겜 성을 떠났는데, 근처에 있는 성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야곱의 아들들을 쫓아오지 못했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야곱은 디나의 사건으로 아들들이 세겜 성을 공격했기 때문에, 이제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이 야곱과 가족들을 원수로 여기고 공격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처음에는 그것을 두려워하였으나,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킬 자리를 돌이키고 나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신 것이다. 야곱이 스스로, 자기들을 공격할지도 모르는 대상들을 해결하러 나서지 않아도 야곱과 가족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자리로 돌아가니 하나님께서 그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주신 것이다. 역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정말로 세상을 이기는 것이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마 10:26) “그러므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덮였던 것은 모두 벗겨질 것이고, 감추어졌던 것은 다 알려질 것이다.
(마 10:27) 내가 어두운 데서 말한 것을 너희는 빛 가운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마 10:28) 몸은 죽일 수 있으나 영혼은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을 두려워 마라. 영혼과 몸을 모두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주여, 내 안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이 더욱 커지게 하옵소서! 날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더욱 자라나 세상을 탐하고 즐기고 싶은 순간마다 나의 모든 행위를 최후에 심판하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세상을 능히 이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어둠을 쫓아내려고 어둠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빛 가운데 나아가 빛으로 나를 채우면 어둠은 저절로 떠나가게 되고, 진정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여, 진리의 말씀으로 내 영혼이 무장되게 하사 순간 순간 나를 엄습하는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인내하고 절제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시며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정독일지의 본문은 창세기 31~33장 말씀인데 그 중에서도 "하나님과 씨름하는 야곱의 이야기"를 묵상해보고자 한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 자신이 맏아들 에서인 것처럼 속여 맏아들의 축복을 받은 후, 형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 하는 마음을 품은 것을 알고 부모의 말을 따라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그 곳에서 그는 20여년을 머물며 많은 연단 끝에 외삼촌 라반의 딸인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고 그들의 몸종 빌하와 실바까지 더하여 총 12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이르러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네 조상들이 사는 땅으로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창31:3)라는 말씀을 듣고 온 가족과 재산을 이끌고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 땅에 사는 자기 아버지 이삭을 향해 떠났다(창31:18).

 

야곱이 자기 아버지의 집을 향해 가는 여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형 에서였다. 20년 전에도 에서가 자신을 죽이려 했는데, 아직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는 이 때에 다시 형을 만난들 형이 자신을 무사히 둘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기에 그는 에서를 만나는 것이 몹시 두려웠다. 

 

야곱의 인생에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형 에서가 자신을 용서해주어야 해결될 문제였기에) 그는 간절히 하나님을 찾았다. 

 

(창 32:9) 야곱이 말했습니다. “제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제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네 나라, 네 집으로 돌아가거라. 네게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창 32:10)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풀어 주신 온갖 은혜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처음 요단 강을 건넜을 때, 저에게는 지팡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에게는 재산을 둘로 나눌 수 있을 만큼 많은 재산이 있습니다.
(창 32:11) 제발 저를 제 형 에서로부터 구해 주십시오. 에서가 와서 저와 아이들의 어머니와 아이들까지 해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창 32:12)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겠다. 내가 네 자손을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도 없이 많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야곱은 정확히 자신이 찾는 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냥 막연한 이방 우상이 아니라 본인이 벧엘에서 만났던 바로 자신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말씀을 붙들고 간절하게 간구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후에 그는 어떤 사람(하나님)과 씨름하게 되었고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도 이 부분을 주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그것을 우리는 붙들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가 예수님(말씀) 안에 있고, 말씀(예수님)이 우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하셨고, 의심없이 믿을 때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막 11:23) 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누구든지 이 산을 향하여 ‘뽑혀서 바다에 던져져라’ 하고 말하고, 마음속에 아무 의심 없이 말한 대로 될 줄 믿으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고, 구한 모든 것은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기억하자!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 약속을 상기시켜 드리며 기도하자! 그럴 때 하나님은 절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못하실 것이다^^

 

(창 32:22) 그 날 밤, 야곱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명의 아들을 데리고 얍복 강 나루를 건넜습니다.
(창 32:23) 야곱은 자기의 가족 모두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강 건너편으로 보냈습니다.
(창 32:24) 그리고 자신은 홀로 뒤에 남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밤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했습니다.
(창 32:25) 그 사람은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쳐서 엉덩이뼈를 어긋나게 만들었습니다.
(창 32:26) 그 사람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날이 새려고 하니 나를 놓아 다오.” 하지만 야곱이 말했습니다. “저에게 복을 주시지 않으면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창 32:27) 그 사람이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했습니다. “야곱입니다.”
(창 32:28)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 이다. 네가 하나님과 씨름했고, 사람과도 씨름을 해서 이겼기 때문이다.”
(창 32:29) 야곱이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왜 내 이름을 묻느냐?” 하며 그 자리에서 야곱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창 32:30) 그래서 야곱은 그 곳을 브니엘 이라고 불렀습니다. 야곱이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죽지 않고 살았다.”
(창 32:31) 야곱이 그 곳을 떠나려 할 때에 해가 떠올랐습니다. 야곱은 엉덩이 때문에 다리를 절뚝거렸습니다.
(창 32:32) 브니엘에서 나타난 사람이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기 때문에,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엉덩이뼈에 붙어 있는 큰 힘줄을 먹지 않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셨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에서에게 보낼 선물을 준비했던 그 날 밤, 어떤 사람이 와서 밤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했다. 성경은 그가 사실은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야곱이 얼마나 간절하게 하나님을 붙들었는지 그 사람은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야곱의 엉덩이뼈를 쳐서 어긋나게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 그리고 야곱은 "저에게 복을 주시지 않으면 보내 드릴 수 없다"고 끝까지 매달린다. 이처럼 야곱이 인생의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그만큼 간절하게 하나님께 매달렸다는 것을 볼 때, 이것이야말로 고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 이름은 이제부터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네가 하나님과 씨름했고, 사람과도 씨름을 해서 이겼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야곱에게 이스라엘로 새롭게 거듭나는 은혜를 주셨다. 이것을 볼 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옛사람이 죽고, 성령의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연상된다.

 

야곱은 도무지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렸지만 하나님은 그 사람 자체가 먼저 변화되게 해주셨고, 야곱 역시 더 이상 문제 해결에 매몰되지 않고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애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애 3:40)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애 3:41)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우리 인생 가운데 고생과 근심케 할 일들을 허락하신 것은 그것을 통해 우리가 회개할 것을 찾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만드시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인 것이다. 

 

야곱은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죽지 않고 살았다"라고 하였으나 그의 옛사람(야곱)은 죽었고 그의 영혼은 새 사람(이스라엘)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자신의 인생 가운데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그 날, 나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주권을 가진 이는 할아버지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고 믿었기에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매달렸다.

 

기도의 응답이 있기까지 우리의 자세도 그러해야 함을 깨닫게 된다.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결국 '나'라는 인간 자체를 변화시키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그것을 알고 인정하고 진실로 믿는다면 끝까지, 기도의 응답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였은즉 이루어질 것을 믿고 구하는 간절함과 끈질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야곱처럼! 말이다. 

 


 

주여, 인간은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야 하나님을 찾습니다. 저의 이토록 연약하고 부족하고 모자람을 용서해주시고 고난이 있어야만 주를 찾는 어리석음이 없게 하옵소서! 평안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믿음으로 충천하게 하사,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마음과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주의 종이 될 수 있도록 변화되게 하옵소서, 성숙해지게 하옵소서! 

 

매일의 삶이 더욱 나를 연단하시는 주님 앞에 성실하고 합당한 훈련의 시간으로 드려지기를 원합니다. 그저 이 고난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문제가 해결되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주신 상황과 환경 안에서 나의 어떤 면이 변화되고 단련되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신 목적을 이루는 하루가 되도록 더욱 깨어있게 하시고 매 순간의 삶에 집중되게 하옵소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 하셨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어리석게 스스로의 선택으로 고난의 기간만 연장시키는 내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고난의 목적을 이루기까지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듯이 그렇게 나도 늘 새롭게 거듭나게 하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시며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정독일지 본문 중에서 성령님께서 주목하여 보게 하신 부분은 너무나도 유명한 "벧엘에서 꿈을 꾼 야곱"의 이야기다. 

 

(창 28:10) 야곱은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갔습니다.
(창 28:11) 어느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어, 야곱은 그 곳에서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야곱은 그 곳에서 돌 하나를 주워 그것을 베개 삼아 잠을 잤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화를 피해, 아버지 이삭이 밧단아람에 있는 외할아버지 브두엘의 집으로 가라는 말을 듣고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던 길이었다. 야곱이 어딘지도 모르는 "어느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어 야곱은 그냥 밤이 되어 돌 하나를 주워 베개로 삼고 잠을 청했다. 여기까지는 정말 특별할 것이 하나 없는 그냥 일상의 모습이다. 

 

(창 28:12) 야곱은 꿈을 꾸었습니다. 사다리 하나가 땅에 세워져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다리 위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창 28:13) 야곱은 여호와께서 사다리 위에 서 계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다.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네가 지금 자고 있는 땅을 줄 것이다.
(창 28:14) 네 자손은 땅의 티끌처럼 많아져서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지며, 땅 위의 모든 민족들이 너와 네 자손을 통해 복을 받을 것이다.
(창 28:15) 나는 너와 함께하고 네가 어디로 가든 너를 지켜 줄 것이다. 그리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리니,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어 주기 전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꿈을 꾸게 하셨다. 그것은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다리의 꿈이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다리 위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을 야곱은 꿈에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야곱은 사다리 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서 계신 모습을 보았다.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장에서 나다나엘을 만났을 때 하신 말씀과도 같다. 

 

(요 1:50)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에게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말해서 나를 믿느냐? 그러나 너는 그것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요 1:51)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결국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사다리를 통해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될 그 날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성령이 오셨을 때 이루어질 것을 연상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한 인간인 야곱에게 이토록 일찌감치 보여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결국에 하나님의 역사를 스스로 이루실텐데 마치 그날이 이르러서 '내가 이렇게 할거라고 미리 얘기해주었지?'라며 하나님의 사람에게 증표를 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야곱의 하룻밤이, 그의 개인적인 삶의 순간이, 세상의 시작과 끝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맞닿게 된 것이다. 마치 그것이 씨줄(개인의 삶의 순간)과 날줄(하나님의 역사)처럼 엮여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수레바퀴가 도는 듯 하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하실 일의 증거를 삼으시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꿈과 환상으로, 기도 중의 감동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럴 때 내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나누실만한 증인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내가 깨끗해야 함을 다시 새기게 된다. 

(딤후 2:20)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그릇과 흙으로 빚은 그릇 또한 있습니다. 그 그릇 가운데 특별히 귀하게 쓰이는 그릇도 있지만 평범하게 쓰이는 그릇도 있을 것입니다.
(딤후 2:21) 만약 누구든지 악을 멀리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주인이신 주님이 쓰기에 귀하고 거룩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는 준비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이삭에게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야곱에게 주셨다. 이미 선대에 약속해주신 것이었기에 후대에 이루어질 것이 확정적이나(물론 후대가 그 약속을 도저히 받지 못할 수준일 때는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시는 경우도 성경에 있기는 하다만) 하나님께서는 야곱과도 다시 언약을 맺으신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일대일로 관계를 맺으신다는 것을 새겨볼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너와 함께하고 네가 어디로 가든 너를 지켜 줄 것이다. 그리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리니,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어 주기 전까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창 28:16) 그 때에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창 28:17) 야곱은 두려워하며 또 말했습니다. “이 곳은 두려운 곳이다. 이 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다.”
(창 28:18) 야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베개로 삼고 잤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처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창 28:19) 원래 그 성의 이름은 루스였으나, 야곱은 그 성의 이름을 벧엘 이라고 불렀습니다.
(창 28:20) 야곱은 이렇게 맹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여 주시고, 이 여행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음식과 입을 옷을 주셔서
(창 28:21) 무사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시면 여호와를 저의 하나님으로 섬기겠습니다.
(창 28:22) 내가 기둥처럼 세운 이 돌은 하나님의 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마치 하나님의 존재가 분명히 온 세상 가운데 편만한데도 우리가 그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다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임하셔서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눈이 열리는 순간에서 이런 고백을 하지 않을까 싶은 부분이다. 

 

야곱은 꿈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다. "이 곳은 두려운 곳이다. 이 곳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간적인 차원의 '두려움'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그것은 곧 경외함의 차원에서의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야곱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가 베개로 삼고 잤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처럼 세우고 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그 성의 이름은 루스였으나 야곱은 그 성을 벧엘이라고 불렀다. 마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원형이 있는데, 거기에서 아담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다스리며 이름을 붙였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에 의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질서가 이 땅에 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야곱은 그렇게 하나님과 개인적인 언약의 관계를 맺고 순종을 다짐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뭔가를 받아야만, 즉 Give and Take의 관계가 되어야만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고 역사를 주관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일대일의 언약적 관계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한 성품을 따라 자비와 긍휼, 은혜와 사랑을 사람에게 베풀어주시고(위에서 아래로), 사람은 그런 하나님 앞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아래에서 위로)을 증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것으로 하는 것이며 그것에는 우리가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 시간으로, 재정으로, 헌신으로 섬기는 것이 다 포함되는 것이다. 오늘 야곱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며 십분의 일을 바치기로 약속했던 것과 같이 말이다.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있는 믿음이어야 하며 그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헌신이 뒤따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도 성경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꿈을 주시고 언약을 맺으시는 것은 주님의 주권이십니다. 그러나 내가 그 꿈을 받고, 언약을 받고, 어떻게 반응하며 나아갈지는 나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선택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룰 통로를 정하신다는 것을 보게 해주시니 감사드리며, 더욱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을만한 깨끗하고 성결한 그릇으로 내가 거듭나게 하옵소서! 내 안에 더러운 것이 너무도 많습니다. 거룩하시고 빛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나의 더러움과 흠이 얼마나 많은지요. 주여, 용서해주시고 자꾸 동일한 죄를 반복하는 연약함을 주의 말씀으로 타파하고,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해서 나아가는 집중력이 내게 있게 하옵소서! 

 

(히 10: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아멘! 결코 뒤로 가는 자가 되지 않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자가 되지 않고 오직 앞을 향해, 본향을 향해, 위에 것에 마음을 두기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내가 되게 하옵소서! 주여, 도우시고 도와주시옵소서! 거룩하시고 존귀하시며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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